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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0년 4월 3일 경향신문 15면 ‘사이비기자 21명 구속’■1990년 4월 3일 ‘사이비기자 21명 구속’
30년 전 서울지검은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 건설·환경업체, 공해배출업소 등의 약점을 잡아 보도무마비 또는 광고비·구독료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뜯어온 사이비기자 및 서적외판원 등을 사기(공갈) 혐의로 구속, 수배했습니다.
이들 사이비기자들은 민경신보, 세무경제, 청소년선도신문, 연예스포츠, 한국건설신문, 대한건설신문, 법사신보, 환경공업신문, 법률신문, 내외타임즈, 한국문화신문 등 낯선 이름의 언론사 소속이었습니다. 이들 기자와 언론사 간부, 주간지 외판사원 등은 “주로 행정기관 및 수사기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공해배출업소·유흥업소·위락시설업체를 주요공갈대상으로 삼아왔으며 군수, 교육감 등 고위 공무원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쳤습니다. 이들이 갈취한 금액은 5억원가량이었습니다.
이들이 ‘보도무마비’ 명목으로 금품을 뜯은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구속된 이씨는 1987년 9월 경기도 청평산장호텔이 증개축 허가를 받은 사실을 알고 이 호텔사장 정모씨에게 ‘상수원보호구역 내에 있는 산장호텔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증개축허가를 냈다’는 기사를 쓰겠다고 협박해 무마용으로 1000만원을 갈취하는 등 지금까지 3000만원을 뜯어온 혐의”였습니다. 또 “함께 구속된 경기도 고양군 보건소직원 김모씨는 무면허의료행위를 하고 있던 후생의원 원장 고모씨에게 단속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100만원을 뜯은 혐의”를 받았습니다. 모두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내용을 알아챈 뒤 이를 보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한 사례였습니다.
또 “수배된 이모씨는 경기도의 모부군수에게 여직원과의 불륜관계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한 뒤 싯가 3억원 상당의 하천부지 3000평에 대한 점용허가를 자기명의로 취득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역시 약점을 잡은 뒤 자신의 이권으로 연결시킨 사례였습니다.
30년 전 경향신문에 보도된 사이비기자들의 사기, 공갈 행각을 보면서 최근 한 종편채널의 기자가 검찰의 권력을 등에 업고 취재원을 겁박한 사례를 떠올리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채널A 보도 화면.MBC는 지난달 31일 채널A 법조팀 소속 ㄱ기자가 금융사기죄로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이철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전 대표와 접촉해 현직 검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우면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털어놓으라고 압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 전 대표는 지난해 9월 허가 없이 투자금을 모은 혐의로 징역 12년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상태입니다.
MBC 보도에 따르면 ㄱ기자는 이 전 대표에게 ‘검찰이 신라젠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에 대해 수사를 제기했다’면서 접촉을 시도했고, 이 전 대표는 지인 ㄴ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ㄱ기자를 만나게 했습니다. ㄱ기자는 ㄴ씨와 만나 이 전 대표의 가족과 재산 추징 등을 거론하며 ‘유시민 이사장 비위를 털어놓지 않으면 가혹한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합니다. 또 유 이사장에 대해 제보하면 검찰에서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도 했습니다. 유 이사장이 신라젠 기술설명회에서 축사를 했고, 최대주주였던 이 전 대표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야권은 유 이사장과 신라젠의 연루 의혹을 제기해 왔습니다.
ㄱ기자는 이 전 대표 측에 윤석열 검찰총장 최측근인 모 검사장과의 통화 내용도 전달했습니다. ㄱ기자는 ㄴ씨에게 검사장과 나눈 대화 녹취록을 불러줬는데 여기에는 이 전 대표가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경우 가족에 대한 수사를 막을 수 있다는 취지의 대화가 담겨 있었습니다. MBC는 이날 보도가 이 전 대표의 제보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해당 검사장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신라젠 수사를 한 적이 없고, 해당 기자와 통화한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MBC 보도가 나간 뒤 채널A는 “해당 기자가 피의자인 이 전 대표로부터 검찰의 선처 약속을 받아달라는 부적절한 요구를 받아온 사실을 파악했다”며 “전반적인 진상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채널A 기자와 이 전 대표 간에 벌어진 일의 실체가 아직 확실히 드러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MBC 보도대로 기자가 취재원을 압박한 것이든, 채널A 주장대로 피의자인 이 전 대표가 기자에게 검찰의 선처 약속을 받아달라는 부적절한 요구를 해온 것이든 어느쪽이나 취재윤리를 어긋난 사례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채널A 기자가 취재원을 겁박한 이유는 금품이 아닌 특종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재물이 아닌 명예가 목적이었다고 해도 부적절한 방법으로 취재한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검찰의 선처 약속을 빌미로 취재를 시도하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주장이 맞든 30년 전의 사이비기자 사건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 없는 없는 셈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30년 전 구속·수배된 기자들이 생소한 매체들의 사이비기자라는 것과 채널A 기자가 국민 다수가 알고 있는 종편채널의 기자라는 차이뿐입니다. 이 차이는 많은 이들을 더욱 씁쓸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국민 다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매체에서 사이비기자나 다름없는, 아니 사이비기자보다 못한 취재 행각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취재윤리라는 네 글자를 다시 곱씹어보게 됩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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