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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스페인 학자의 테르시오 설명
· 성 함 3G5oT248 ·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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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흔히 테르시오 라고 하면 파이크병의 네 귀퉁이에

 총병이 배치되어 있는 전투대형이나 파이크와 총병이 조합된 전술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음


근데 스페인에서 테르시오를 많이 연구해온 학자인

 에두아르도 데 메사에 따르면 이건 틀린 설명임


16~17세기 당시 스페인 보병은 테르시오와 일반 연대로 나뉨 

이 중에 테르시오가 더 정예한 부대임


테르시오라는건 정예한 보병 부대를 뜻하는 말임


테르시오는 보통 10개에서 13개의 중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중대에 250명으로 구성됨


테르시오의 가장 큰 특징은 융통성과 맞춤형 전술인데

 각 중대가 서로 뭉치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싸우기도 하면서 

맞춤형 전술을 고안했음


만약 기병이 많고 평야지대에 있는 프랑스군을 상대하려면

 파이크병의 비율을 높이고 보병이 많고 습지대에 있는 

네덜란드군과 싸울 때는 총병을 늘리는 식임


테르시오에서 일부 중대를 떼어내고 새로운 부대를 급조해서 대처하는 융통성 있는 편제가 바로 테르시오의 가장 큰 장점임 


테르시오는 대부분의 전투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네모난 방진이 아니라 총기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렬로 쫙 펼친 전열을 형성했음


게다가 총병이 파이크병의 네 귀퉁이에 있다는 

오해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파이크병의 앞에 밀집해서 일제사격을 날렸음 

네 귀퉁이에 총병이 서는건 특수한 상황일 때임


결론적으로 테르시오는 전술이나 느려터진 방진이 아니라 정예보병 부대를 말하는거임





추가로 밑의 글은 에두아르도 데 메사의 책 중 테르시오 내용을 번역한거임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보병은 "테르시오"와 "연대"로 알려진

두 종류의 부대로 조직되었다.



전자는 규모는 작았지만 후자보다 위신이 더 높았고 항상 정예병으로 여겨졌다.



두 부대(테르시오와 연대)는 모두 중대로 구성되었다.


테르시오는 평균 10개에서 13개의 중대로 구성되었다.

중대마다 군인의 수는 이상적인 숫자와 현실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총기의 수는 테르시오와 연대 사이에서도 다양했다.

그러나 테르시오는 일반적으로 연대보다 화기의 비율이 높았다.


흥미롭게도 17세기까지 독일 연대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무기로 파이크를 선호했다.



테르시오의 군인들은 그들이 항상 스페인인은 아니었지만 직접 계약했기

때문에 스페인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연대의 병사들은 그들의 대령에게 충성을 맹새했다.



테르시오의 장교는 국왕이나 총독이 임명했고 연대의 장교는 대령이 임명했다.


최초의 테르시오는 1536년 카를로스 1세의 휘하에 결성되어

스페인인으로 구성되었다.



1584년에야 펠리페 2세가 최초의 이탈리아 테르시오의 구성을 승인했다.



그 전에 스페인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연대에 복무했다.


1598년 부르고뉴 연대는 테르시오로 변모되었다.



이것은 1602년 왈롱 연대가 테르시오로 바뀌고



1605년 아일랜드, 영국, 스코틀랜드의 용병들도 각각 테르시오로

변모하게 된다.



독일인들의 연대는 테르시오로 변경되지 않고 연대로 계속 남았다.


테르시오는 13개에서 15개의 중대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었는데



그 중 2개는 스페인 및 이탈리아 부대의 아쿼버스와

머스킷만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플랑드르 주둔 스페인군의 1632년 군령에서는

테르시오 중대 수가 15개로 고정되었다.


1598년의 조례에서는 각 중대의 병력을 250명으로 정하였지만



1632년 조례에서는 한 중대 당 2천 2백 명이었다.

이처럼 중대당 병력 수는 유연했다.


영미권의 군사혁명 이론가들은 테르시오 1개당 병력이 3천 명이었고



함께 뭉쳐서 덩어리로 싸웠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들은 머스킷병과 아쿼버스병 주위에 파이크를



두른 네모난 방진으로 형성되었다고 묘사했고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 이론은 1560년부터 1700년까지

스페인군의 후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이는 16세기 말~17세기 초 "선진 군대"를 보유한

네덜란드와 스웨덴 군을 부각시키고 스페인의 후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실 테르시오는 각 테르시오마다 자체적인

하위 명령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테르시오 안의 중대가 분리되어서

단독으로 싸우기도 하고 뭉치기도 하면서 유연하게

잘 대처하는 중요한 요소였고 한 중대가

다른 곳으로 멀리 파견되어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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