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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오늘(7일) 씨티은행 차기 행장 윤곽…첫 여성 민간은행장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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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은행은 7일 2차 임원후보추천위원회 회의를 열고 차기 행장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 /더팩트 DB

유명순 수석부행장 유력 후보로 거론

[더팩트ㅣ정소양 기자] 한국씨티은행의 차기 은행장 최종 후보가 7일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유명순 수석부행장의 행장 선임 여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이날 2차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회의를 열고 차기 행장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

앞서 씨티은행은 지난달 25일 1차 임추위를 열고 복수의 차기 행장 후보자에 대해 검토했다.

1차 임추위 당시 씨티은행은 최종후보자군(숏리스트)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복수 후보 중 현재 행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유명순 한국씨티은행 수석부행장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업계는 유명순 부행장의 행장 선임 여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유명순 부행장은 현재 씨티은행의 유력한 차기 행장으로 거론되는 후보로, 만약 유명순 부행장이 차기 행장의 뽑힐 경우 한국씨티은행 설립 이래 첫 여성 은행장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유명순 부행장은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한국씨티은행에 입사했다. 이후 대기업리스크부장, 다국적기업금융본부장 등을 거쳐 기업금융그룹장에 올랐다. 2014년 JP모건 서울지점의 기업금융 총괄책임자를 맡았다가 씨티은행으로 복귀해 현재까지 기업금융그룹장을 하고 있다.

최근 씨티은행의 모회사인 씨티그룹이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했다는 점도 유명순 부행장의 차기 행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지난달 11일 씨티그룹은 제인 프레이저 전 씨티글로벌 소비자금융부문 이사를 CEO로 임명한 바 있다. 미국 월가은행 중 첫 여성 CEO다.

업계 안팎에서는 유명순 수석부행장이 유력한 차기 행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씨티은행 제공

일각에서는 유명순 수석부행장이 아닌 내부 임원이나 제3의 외부 인사가 행장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명순 부행장 외에는 박장호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대표가 하마평에 이름을 올렸다.

박장호 대표는 1965년생으로, 30년 넘게 투자은행(IB) 업계에 몸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1998년 뱅커스트러스트(BTC) 투자은행 부문 대표를 역임했으며, 2004년엔 살로먼스미스바니 채권발행시장(DCM) 부문 대표를 지냈다. 2005년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대표에 선임된 뒤 15년 넘게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박장호 대표는 국내에 진출 외국계 투자은행 중 굵직한 인수합병(M&A)은 물론 IPO 거래를 성사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업계 안팎에서는 씨티그룹 아시아태평양본부 출신 외국인 후보와의 경쟁 구도가 그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면서도 "새로운 하마평이 들리고 있지만, 여전히 유명순 부행장이 가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js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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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태일이 1970년 10월 노동청에 제출한 진정서에 직접 적은 글. 전태일재단 제공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에서 한 청년이 스스로의 몸에 불을 당기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그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직접 보고 겪었습니다. 십대 초중반 여공들이 점심까지 굶어 가며 하루 종일 일하고, 형편없는 일당을 챙겨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 속에 불이 일었습니다. 밤을 새워 근로기준법을 공부했지만 법과 동떨어진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습니다. 11월 ‘근로기준법 화형식’에서 자기 몸에 불을 붙이며 외친 그의 말은 ‘글로 쓰여진 법이라도 지키라’는 처절한 일갈이었습니다.

전태일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경향신문은 그가 일했던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세상에 처음 알렸습니다. 50년 전 이날 경향신문 사회면 톱에 걸린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이라는 기사입니다.

1970년 10월7일 경향신문
“나어린(나이 어린) 여자 등이 좁은 방에서 하루 최고 16시간이나 고된 일을 하며 보잘 것 없는 보수에 직업병까지 얻고 있어 근로기준법을 무색케 하고 있다.” 기사의 첫 줄입니다. 기사가 전하는 평화시장의 노동실태는 끔찍했습니다. 한 업체는 2평 정도 작업장에 15명을 욱여넣고 일을 시켰습니다. 그나마도 한 층을 두 층으로 나눠서, 작업장의 높이는 1.6m밖에 안 됐다고 합니다.

허리도 펴기 힘든 좁은 방에서 여공들은 하루 13~16시간 일해야 했습니다. 쉬는 날은 한 달에 두 번,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이었습니다. 환기도 되지 않는 곳에서 종일 옷감의 먼지를 들이마시다 보니 폐결핵과 위장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기사는 “성장기에 있는 소녀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노동자 대부분이 노동청의 건강진단을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기사가 나오기 1년 전인 1969년에 건강진단이 있었지만 1개 공장에서 2~3명 정도만 받았다고 합니다.

충격적인 노동실태를 세상에 처음 알린 이 기사의 출처가 다름 아닌 전태일입니다. 기사가 나오기 하루 전인 10월6일, 전태일이 회장을 맡았던 ‘삼동친목회’는 노동청에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조건개선 진정서’를 냈습니다.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작성한 설문지 126장이 동봉됐습니다. 경향신문 기사는 이 진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은 기사가 난 그날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군데군데에 노동자들이 몰려서서 신문 한 장을 두고 서로 어깨너머로 읽으면서 웅성거렸다. …(중략)… 신문이라고 하는 것은 높은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 바로 그들이, 바로 그 신문에 하찮은 쓰레기 인간들인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이라도 하듯 실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은 통곡과 탄식과 울분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노동청은 뒤늦게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이 다녀가도 평화시장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답답해진 전태일은 삼동친목회 친구들에게 11월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 시위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있으나 마나 한 법을 불태워버리자는 뜻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겐 ‘내가 외치는 구호를 따라 외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 전태일은 그날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둘이었습니다.

2018년 12월11일 오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설비를 점검하다 숨긴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씨(24)가 생전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이태성 간사 제공
그의 죽음 이후 노동운동은 대전환을 맞았습니다. 청계피복노조가 출범하고, 침묵하던 다른 노동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50년이 흘렀습니다. 좋아진 것도 있지만, 전태일이 진정 꿈꾸던 세상은 아직 먼 이야기 같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0명에 달했습니다. 하루 평균 7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은 것이죠.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는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는 유독 전태일의 이름이 많이 보입니다. 얼마 전 국회 온라인 국민동의청원을 통과한 ‘전태일 3법’ 때문입니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제11조’,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조법 제2조’, 산업재해를 일으킨 회사를 강하게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그 내용입니다. 3개 법 모두 10만 동의를 넘겨 해당 상임위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50년 시간을 건너온 전태일의 외침에, 정치는 응답할까요?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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